둘째 오라버니
86 일본 하꼬네 호텔에서,,,
5천엔을 주고 빌려입은 드레스
관광보다는 답사형식의 여행을 많이 했던 덕분에
지금의 나를 당당한 모습으로 키워주는데
한 몫을 했음에 둘째오라버니께 고맙게 생각한다.
가족을 모두 초청해주신 2째 오빠.
나는 아버지보다도
오빠 네분중에서 둘째오빠를 가장 어려워했고 ,,,지금도 어렵지만 ,,
오빠가 나를 배려하는 마음은 남 다르다.
부모님이 안계서서 일까?,,,
조카 손녀딸 며느리 등 (7명)
2004년 일 소대가 방문하여
동부 캐나다 일주를 같이하며 즐거웠는데,,,
항상 감사드리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관광보다는 답사형식의 여행을 많이 했던 덕분에
지금의 나를 당당한 모습으로 키워주는데
한 몫을 했음에 둘째오라버니께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여행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허락하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나온 해답이리라.
어느 때던지,
한국을 나가거나 들어올 때도 중간의 도시를 거의 경유하며
혼자 여행을 한다.
동남아와 유럽 일부
캐나다의 경우 중부를 빼고는 ( 관광지가 거의 없음)
빅토리아섬. 밴쿠버, 오타와, 몬트리올,퀘벡, P.E.I 할리팩스.등
서너 번도 더,(가족들이 한국에서 오면 또 가고, 또 가고,,,)
미국도 중남부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녀본 것 같다.
비행기와 그레이하운드와 기차와 자동차로,
그중에도 그레이하운드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고
도시의 다운타운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시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느낌은 대중교통 이라서일까?
검은 아이들의 거침없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비행기를 싫어하는 이유라면 정해진 스캐쥴에 움직여야 하고
답답한 비행기의 대합실이나 기내의 한정된 공간도,
나의 시야에서 머무는 모든 산천들이며,
평원과 그림 같은 집들을
특히, 기차여행을 할 때는 거꾸로 앉아서 가기를 좋아하는데,
마치 지나간 추억들을 모두 모아서 보는 것 같아 ,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자부심을 갖는데
학벌도 돈도 외모도 모두 부족한 가운데
나의 당당한 베짱이 있음은 4남2녀의 형제들과 사랑으로 성장했음이며
혼자 열심히 해왔던 일(사업)들이 나를 키워주었고
자신에게는 다소 엄격한 나의 성격이
지금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중에는
특별히 보이지 않는 것 들에
많은 의미를 둔다.
그런 일 중에는 마음을 으뜸으로 ,
아마, 진실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여리므로 늘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하고 ,
좋은 일을 생각하며 행하기를 원하며,
긍정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 가을의 단풍을 두 눈에 가득 담아 두는 것도
단풍이 아름답기에,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려 해서,,,
5천엔을 주고 빌려입은 드레스
처음 해외여행을 86년 봄을 시작으로,,,
(당시엔 한국여성의 자유여행이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개방되었다.)
관광보다는 답사형식의 여행을 많이 했던 덕분에
지금의 나를 당당한 모습으로 키워주는데
한 몫을 했음에 둘째오라버니께 고맙게 생각한다.
가족을 모두 초청해주신 2째 오빠.
나는 아버지보다도
오빠 네분중에서 둘째오빠를 가장 어려워했고 ,,,지금도 어렵지만 ,,
오빠가 나를 배려하는 마음은 남 다르다.
부모님이 안계서서 일까?,,,
8살쯤 내 기억엔 헌병으로 군복무를 하며 휴가 오실때
꽃분홍색 스웨터를 사오신 내 둘째 오라버니였다 .
그후 13살 차이가 있는 둘째오라버니는
늘 부모님을 대신해서 못난이 막내 여동생을 챙겨주셨다.
학교다닐때 등록금은 물론이며
잦은 해외출장에서 오실때에도
출가외인인 나에게 선물을 꼭 챙겨주신 오라버니ㅡ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의 돐기념 때에도 항상 오셔서 금가락지를 끼워주셨다.
이사할때 마다 거실 산데리아는 물론
큰병원에 특실을 1달씩 입원해도 말씀없이 퇴원수속을 해 주시었고
캐나다 이민수속을 할 당시에도 ?억 정도에 미치는 거금을 내주시던ㅡ
내 오라버니~
나에게는 각별하시지만 나와 이야기를 해본 일은 별로 없는
그냥 하늘같은 오라버니~
오빠의 애인을 소개받은 일은 일들??은
하늘과 땅차이인 나를 인격적으로 대 해주신 것같아
가슴깊이 간직하고있다.
어느덧 고희를 넘기셨으나 여전히 고고하시고 건강하신 오라버니 .
이젠 나도 환갑을 넘겼으니 같이 늙어간다고?나 할까??
넓은 캐나다 들판에 지는 아름다운 해를 볼때면
내 오라버니에게 다시한번 황혼의 로멘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80부터라니
남은 세월이 너무 길다.
유가다 (실내복)를 입고
올케는 (캐나다 2번 방문).
조카 손녀딸 며느리 등 (7명)
2004년 일 소대가 방문하여
동부 캐나다 일주를 같이하며 즐거웠는데,,,
항상 감사드리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처음 해외여행을 시작한 86년 봄을 시작으로,,,
관광보다는 답사형식의 여행을 많이 했던 덕분에
지금의 나를 당당한 모습으로 키워주는데
한 몫을 했음에 둘째오라버니께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여행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허락하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나온 해답이리라.
어느 때던지,
한국을 나가거나 들어올 때도 중간의 도시를 거의 경유하며
혼자 여행을 한다.
동남아와 유럽 일부
캐나다의 경우 중부를 빼고는 ( 관광지가 거의 없음)
빅토리아섬. 밴쿠버, 오타와, 몬트리올,퀘벡, P.E.I 할리팩스.등
서너 번도 더,(가족들이 한국에서 오면 또 가고, 또 가고,,,)
미국도 중남부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녀본 것 같다.
비행기와 그레이하운드와 기차와 자동차로,
그중에도 그레이하운드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고
도시의 다운타운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시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느낌은 대중교통 이라서일까?
검은 아이들의 거침없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비행기를 싫어하는 이유라면 정해진 스캐쥴에 움직여야 하고
답답한 비행기의 대합실이나 기내의 한정된 공간도,
나의 시야에서 머무는 모든 산천들이며,
평원과 그림 같은 집들을
두 눈 가득히 담아오는 그런 여행이 나는 좋다.
특히, 기차여행을 할 때는 거꾸로 앉아서 가기를 좋아하는데,
마치 지나간 추억들을 모두 모아서 보는 것 같아 ,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자부심을 갖는데
학벌도 돈도 외모도 모두 부족한 가운데
나의 당당한 베짱이 있음은 4남2녀의 형제들과 사랑으로 성장했음이며
혼자 열심히 해왔던 일(사업)들이 나를 키워주었고
자신에게는 다소 엄격한 나의 성격이
지금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중에는
특별히 보이지 않는 것 들에
많은 의미를 둔다.
그런 일 중에는 마음을 으뜸으로 ,
아마, 진실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여리므로 늘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하고 ,
좋은 일을 생각하며 행하기를 원하며,
긍정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 가을의 단풍을 두 눈에 가득 담아 두는 것도
단풍이 아름답기에,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려 해서,,,